[차이나 인사이트]부처는 코끼리 타고 왔는데 예수는 대포 타고 중국 왔나 조회수 : 884
등록일 : 2017.02.22 02:14
 
이유진 연세대인문학연구원 연구원

이유진 연세대인문학연구원 연구원

1920년대 중국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장멍린(張夢麟)은 “부처는 흰 코끼리를 타고 중국에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대포를 타고 날아왔다”고 말했다. 기독교를 서구의 무력 위협에 빗댄 것이다. ‘대포 위의 예수’란 비유엔 기독교가 중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외래 종교란 인식이 담겼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건 없나 보다. 최근 바티칸과 중국의 수교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 니 말이다. 베이징의 하늘엔 얼마나 많은 신들이 거닐고 있는 걸까.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2016년도 종교 자유 보고서’에서 중국을 ‘특별관심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중국은 즉각 “종교 문제를 악용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걸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중국이 종교 탄압국으로 이름을 올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이 종교에 관대할 수 없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
 
첫 번째는 종교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부정적 인식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마르크스의 유명한 언설은 중국과 종교의 불화가 필연적일 것임을 암시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종교란 지배계급의 착취를 용이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고단한 현실을 견뎌내게 하는 아편으로서의 종교, 이는 현실의 고난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소멸할 존재다. 억압이 끝나는 날 종교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와 종교의 타협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신론 정당이 통치하는 중국에서 유신론의 종교란 과연 용인될 수 있는 걸까. 1954년 제정된 중국 헌법은 “중국 공민은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천명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사람들에게 종교를 믿지 않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종교 제거란 과제를 방기한 건 아니었다. 봉건시대의 잔재인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무신론 교육을 강화하고 종교단체의 재산을 몰수했다. 57년의 반우파 투쟁과 문화대혁명의 극좌 노선을 걸으며 종교 탄압을 자행했다. 종교는 궤멸의 위기에 처한 반면 공산주의는 최고의 신앙으로 등극했으며 마오는 신격화됐다.
 
종교는 외세의 침략 도구?
 
두 번째는 종교가 외세의 침략 도구로 이용됐던 역사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중국이 외세의 종교 개입을 극도로 경계하게 된 건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기인한다.
 
서구 열강의 함포에 문호를 개방한 중국은 기독교 포교의 자유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반기독교운동인 교안(敎案)이 잇따랐다.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0년부터 의화단운동이 터진 1900년까지 무려 400건 이상의 교안이 발생했다.
 
반제국주의 애국운동으로 규정되는 의화단운동은 바로 천주교·개신교를 겨냥한 반기독교운동이었다. 중국인에게 기독교의 전파는 민족 자존을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부당한 것이었다. 장멍린의 ‘대포 위의 예수’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가 중국에서 용인되려면 무엇보다 ‘외세’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뒤 중국 교회가 내세운 ‘삼자(三自)’ 원칙도 여기서 도출된 것이다. ‘삼자’란 교회 운영의 독립인 자치(自治), 경제적 독립인 자양(自養), 전도의 독립인 자전(自傳)을 가리킨다. 중국 개신교와 천주교는 이 삼자 원칙에 따라 바티칸이나 해외 선교회에 종속되지 않는다.
 
종교는 분리독립운동의 진앙?
 
중국과 종교의 불화엔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에 대한 중국 당국의 우려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도 하다. 티베트자치구의 불교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이슬람교는 티베트족과 위구르족 정체성의 근원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더더욱 이들 지역의 종교를 완전히 통제 가능한 상태로 두고자 한다.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나라에 대한 보복, 중국의 화약고로 불리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반테러 조치 등은 중국에서 종교란 바로 정치의 영역임을 말해 준다.
 
개혁개방 물결로 회생한 종교
 
중국에서 종교가 기사회생한 것은 개혁개방 바람을 타고서다. 중국이 달성해야 할 목표가 ‘계급투쟁’에서 ‘경제건설’로 바뀌며 종교에 대한 억압이 완화된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정권은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선 신도와 비종교인의 연합이 중요하다고 봤다.
 
또 기존 가치관이 붕괴하면서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종교가 파고들 여지가 많아진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공산주의를 위해 분투한다는 도덕 체계는 물질주의와 실용주의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사회구조의 전환기에는 으레 종교가 각광을 받게 마련이다. 시대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위안과 안정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적극적으로 인도해 사회주의 사회에 부합하도록 한다”는 명제를 내놓았다.
 
물론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원이 종교를 믿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원칙이 어긋나면 당의 전투력이 약화되고 당의 종교 정책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역시 “공산당원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무신론자가 돼야 하며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결코 종교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공산주의는 종교적 색채를 띤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를 종교로 정의했다. 그는 국가주의와 사회주의를 유사종교로 규정하면서, 유사종교는 유신론적 종교와 마찬가지로 추종자들의 충성과 숭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종교와 공산주의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신앙과 신앙의 대립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확신은 메시아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같은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티칸과 중국 수교 임박했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용어에서 보듯 중국은 모든 것을 ‘중국화(sinicization)’하고자 한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불교의 중국화, 이슬람교의 중국화, 기독교의 중국화처럼 모든 종교의 중국화를 내세운다.
 
어떤 외래 종교도 중국화하지 않으면 뿌리내리기 어렵다. 명나라에 가톨릭을 전파한 예수교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 지식인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건 그가 중국 문화 특히 유교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르고 유학자가 입는 옷을 입으며 중국어를 배웠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상제(上帝) 개념을 통해 천주를 설명하는 식으로 유교와 가톨릭 교리의 유사성을 찾고자 했다. 훗날 로마 교황청이 중국의 의례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며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가 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 전 세계 12억 신도를 이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과 13억 인구인 중국의 수교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심은 주교 임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쏠린다. 중국은 교황의 고유 권한인 ‘주교 서품권’마저 독자적으로 행사해 왔다. 시작은 58년이다. 자체적으로 주교를 선출했다가 교황청이 꺼내 든 ‘파문’ 카드에 부닥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법과 관련해 현재 ‘베트남 모델’이 거론된다. 이는 주교 후보자 명단을 바티칸에 제출하면 바티칸이 주교를 선출하고 이를 다시 정부의 동의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교황이 서품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바티칸 수교엔 대만 문제도 걸려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는 중국이 대만과의 단교를 수교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티칸-중국 수교를 위해선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해야 한다.
 
문화상품화하는 종교


21세기 중국에선 제도종교와 민간신앙 모두 부흥하고 있다. 동력은 종교의 문화상품화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문명이 진보하며 사상이 제고되면 종교가 존재할 기반이 사라지면서 결국 종교는 소멸할 것”이라고 시진핑은 말했지만 종교는 이미 중국에서 든든한 기반을 마련한 듯하다.
 
문화상품이라는 외피를 걸친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억압받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건 종교가 상품화되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터이다. 신성성을 잃은 종교를 과연 종교라 할 수 있을까. 베이징 하늘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지구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신은 과연 어떤 신일까.


◆이유진
연세대에서 ‘중국 신화의 역사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화의 상징성 및 신화와 역사의 얽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한 손엔 공자 한 손엔 황제』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 등을 썼다.


이유진 연세대인문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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