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Knowledge <589> 시계와 중국의 인연 조회수 : 2,439
작성자 : 이동현 등록일 : 2015.09.14 00:22
 
이동현 기자
지난 7월 스위스시계산업협회(FWSI)는 스위스산 시계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2009년 이후 최대의 수출 감소였지요. 스위스 시계산업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 경제가 시들해진 탓입니다. 사실 시계산업과 중국의 인연은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꿔놓은 그 인연을 살펴봅니다.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 온 스위스 시계산업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수출 감소가 단기간 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8월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면서 악재가 늘었다. 장기적으론 중국 ‘수퍼 리치(Super Rich)’들의 소비가 회복될 거란 관측도 있지만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다른 나라로 확산되면서 사치재 소비가 상당기간 위축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WSI)의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스위스산 시계 수입은 39.6%나 줄었다. 중국은 세계 3위 스위스 시계 수입국이다. 최대 수입국인 홍콩도 28.7% 감소했다. 홍콩 시계시장의 주고객이 중국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의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아랍에미리트(-29.8%)·한국(-19.7%)의 수입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스위스 최고급 시계 브랜드 블랑팡이 2012년 선보인 ‘빌레레 트래디셔널 차이니스 캘린더’. 최고급 기계식 시계기술을 적용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초복잡 시계)이지만 서양력 대신 중국력을 구현해 냈다. [사진 스와치그룹코리아]
 스와치 그룹, 리치몬트 그룹 등 스위스 시계의 ‘큰 손’들은 중국·홍콩은 물론, 화교경제권인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 시장에 공을 들여 왔다. 스와치 그룹 산하 최고급 시계 브랜드인 블랑팡은 2012년 세계 최대 시계박람회인 바젤월드에서 중국 달력을 표시하는 시계 ‘빌레레 트래디셔널 차이니스 캘린더(Villeret Traditional Chinese Calendar)’를 선보였다.

 2시간 단위로 나뉜 중국력에 따라 윤년 표시와 십이지(十二支), 오행(五行)과 십간(十干)을 표시한다. 60년을 기준으로 12지가 반복되는 중국 태음력을 구현한다. 블랑팡은 올해에도 한정판 차이니즈 캘린더 시계를 내놨다. 다른 스위스 시계 업체들도 중국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내놓고 있다.

 FWSI는 전체 시장의 50%를 넘는 대(對)아시아 수출 감소를 우려한다. 중국의 소비 위축이 역내 다른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 경제의 성장은 스위스 시계산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원동력이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지난달 “중국 주식시장의 혼란이 스위스 시계 산업의 거품을 터뜨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나라 때 11m 높이 천문시계 발명

송나라시대 과학자인 소송이 1090년에 발명한 천문시계. 당대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정확한 시간의 측정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였다.

 인류가 처음 발명한 시계는 해시계와 물시계다. 태양의 변화를 보고 매일, 매년 같은 시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물시계는 정확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계절·날씨에 따라 변하는 태양만으로 정확한 시간을 알기엔 한계가 많았다. 물시계 역시 정확한 시각(時刻)을 알려주지 못했다.

 기계장치 시계의 개발은 중국과 아랍이 먼저였다. 송나라 시대인 1090년 과학자 소송(蘇頌)은 물시계와 물레방아 모양의 톱니바퀴 장치를 이용한 11m 높이의 천문시계를 발명했다. 16세기 서구의 기계식 시계보다도 일 오차가 적었다고 한다. 13세기 아랍 과학자 이븐 알 자자리(Ibn al-Jazari)는 시보(時報)장치가 달린 천문시계를 발명했다. 조선 세종 때의 자격루는 이 두 시계를 모방한 것이다.

 중국과 아랍의 시계기술은 전승되지 못했다. 당대 권력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그 사이 서구의 시계기술은 혁명적 발전을 이뤘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복잡한 기계장치는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에서부터 멀리 바위를 날려보내는 공성무기에 이르기까지 기계장치가 응용됐다. 158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진자운동의 등시성(等時性·길이가 같은 진자는 질량에 관계없이 같은 주기를 갖는다는 성질)을 발견하면서 시계기술은 급진전한다. 1656년 크리스티안 호이겐스가 이를 처음 시계에 응용했다. 일정한 주기로 왕복하는 진자의 움직임을 시간 측정에 사용한 것이다.

 16세기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태엽장치는 금세 멈춰버리는 진자운동의 수명을 늘렸다. 이즈음 시계 역사의 혁명적 발명품이 등장한다. 태엽의 동력을 일정한 주기운동으로 바꿔주는 조속기(調速機·regulator)와 이를 회전운동으로 전환하는 탈진기(脫進機·escapement)가 등장한 것이다.

 감겨있던 태엽이 일정속도로 풀리면서 동력을 전달하고 이를 회전운동으로 바꾼 것이 기계식 시계의 기본원리다. 18세기에 이르러선 인류 역사상 가장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제국주의 침략의 미끼, 시계

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인 탈진기(脫進機·escapement)가 기계식 시계에 구현된 모습. 밸런스 휠(A)의 스프링에 동력이 전달되면 이스케이프먼트휠(탈진기·B)이 규칙적인 회전운동으로 변환한다. 여기에 톱니바퀴를 연결해 시·분·초를 구현할 수 있다.
 가장 진보된 시계기술을 갖고 있던 중국은 서구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서양과의 교역에 관심이 없었던 중국의 문을 연 것은 시계였다. 11세기 소송의 시계기술은 400년 만에 잊혔고 중국은 서양 선교사와 상인들이 가져 온 시계에 매료됐다.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서양인들이 가져온 자명종에 빠져 마테오 리치의 연경(지금의 베이징) 거주를 허락했다.

 청대에 이르러서도 시계는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청나라 황실은 서양의 자명종, 자동시보장치와 같은 시계에 빠져들었다. 강희제는 황궁에 시계 제작소를 만들었고 1707년에는 스위스 출신 시계공이었던 프랑수아 루이 스타틀랭 신부가 시계공방 운영을 위해 베이징에 파견되기도 했다.

 시계를 황제의 장난감으로만 여겼던 중국은 과학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시계는 제국주의 열강의 미끼와도 같았다. 시계를 통해 문을 연 중국은 19세기 제국주의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시계와 대포, 아편은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서구의 시계를 접한 일본은 달랐다. 유럽 상인들은 교역권을 얻기 위해 유력인사들에게 앞다퉈 시계를 바쳤다. 1580년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선교사로부터 자명종을 선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국과 달리 일본은 스스로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 나가사키와 에도(지금의 도쿄)에 독자적인 시계공방이 등장한다. 일본의 시간체계에 맞춘 새로운 시계를 제작하기도 했다.

 경제사학자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는 『시계와 문명』(1981)에서 “중국은 자명종에 매료됐지만 외국 사상을 흡수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무미건조한 복제품만 만들었지만, 일본은 외국 사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서양시계를 모방하는 대신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변형할 수 있었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이 지금까지도 스위스 고급시계에 대항하는 유일한 경쟁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미 300년 전부터 갈고 닦은 기술개발 덕분이었던 셈이다.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

 스위스 시계산업은 70년대 이른바 ‘쿼츠 쇼크’(값싼 전자시계의 등장으로 스위스 시계업계가 몰락한 사건)를 극복하고 90년대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다. 2000년대 이후엔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쿼츠 시계를 처음 상용화한 일본의 세이코가 스위스 시계를 고사 직전까지 몰고 갔다면, 스위스 시계의 부활을 가능하게 했던 건 신흥개발국들의 성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90년대 개혁·개방 이후 ‘부유한 개인’들이 급증한 중국이 일등공신이 됐다. 스위스산 고급시계는 중국 부자들의 성공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치재였다. 금과 보석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스위스 최고급 시계업체들은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주얼리 워치들을 팔았고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스위스 시계산업은 정밀기계기술의 상징에서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400년 전 시계를 미끼로 ‘잠자는 용’을 사냥했던 시계산업으로선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가 또 다른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휴대전화 보급으로 시계는 필수품 목록에서 뒤로 밀린지 오래다. 그나마 저렴한 쿼츠 시계가 전체 시계시장의 98%(디지털·아날로그 포함)를 차지한다.

 중국은 기계식 시계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지만 생산에서도 스위스를 위협한다. 비록 저가시계이긴 하지만 2012년 기준 중국과 홍콩의 시계생산량은 9억 개로 스위스의 2100만 개를 훨씬 뛰어넘는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스위스 시계업체들은 기계식 무브먼트(시계 구동장치) 기술을 극비사항으로 취급했지만 컴퓨터와 수치제어(NC) 가공기술의 개발로 이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흔한 기술’이 됐다. 스위스산 ETA 무브먼트를 베낀 중국산 무브먼트는 이베이 등에서 불과 몇 천원에 구할 수 있다.

 ‘시간을 본다’는 근본적 기능은 물론, 다른 기능까지 포섭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 워치 역시 강력한 경쟁자다. 싱가포르 경제전문지 비즈니스타임스는 최근 “스위스 시계업체들은 애플워치가 자신들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업계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3대 휴대전화 제조사로 성장한 중국 화웨이는 최근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5’에서 스마트워치를 선보였다. 뛰어난 품질과 첨단기능, 저렴한 가격까지 겸비한 중국의 경쟁자들이 스위스 시계업계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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